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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운영위원
제 목    2013년도 계사년 세일제 봉행

일 시 : 2013년 10월 12일 토요일 맑음. 11시.



장 소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릉리 산 55



 


날씨가 맑고 하늘은 청명한 오늘, 우리의 시조이신 시중공 조맹의 묘사일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는데 길이 잘 정비되어 주말이지만 막힘없이 달려 강남에서 50여분만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11시에 예정인데 30분전이지만 집안 어르신들이 많이 와 계신다. 우리 호군공파에서도 상주, 대구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많이 오셨고, 서울에 계신 분도 많이 오셨다.



입구를 알리는 안내 표지석이다. 광해군 어머니 공빈 김씨의 성묘와 같은 번지이다.



새로 제작된 신도비.



시조 구 묘갈명.



신라말엽, 시조께서는 본래 관직에 나가시지 않고 천마산 기슭 암굴에서 호랑이와 벗하며 도를 닦고 사셨는데 왕건이 고려를 개국하기전 신라와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대책회의를 하였는데 여러 장수들이 천마산에 사시는 바우라는 분을 모셔서 지략을 구하면 될것이라는 청이 있어 왕건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므로 이에 응낙을 하고 전투에 나가시니 이때 이미 70의 고령이 셨다한다. 왕건과 만난 장소에 현재 견성암(見聖庵)이 있어 시중공의 위업을 기리고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마침내 전투에서 승리하여 왕건이 고려를 개국하고, 시조의 이름을 맹(孟)으로 하사하고, 문하시중 평장사에 제수 하였다고 한다. 고려초의 지명이 풍양현(지금 남양주시)으로 이것을 따서 본관으로 정하니 풍양조씨가 되었다.




시중공 묘소이다.


묘소 뒤에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의 성묘가 있어 이로 인해 시조묘소는 시련을 겪는다.


(대종회 자료에 의하면)


이 시중공 묘소가 조선왕조에 와서 한차례 커다란 곡절을 겪게 되어 이 사실도 간략하게 소개드린다. 조선 제14대 선조대왕에게는 공빈김씨(恭嬪金氏)라는 후궁이 있었으며 이 공빈김씨는 후일 조선 제15대 왕이된 광해군의 생모가 되는 분이다.


선조 10년(1577) 공빈김씨가 죽자 그의 묘를 시중공 묘소 뒤 30보쯤 떨어진 곳에 장사지냈다. 당시의 국법으로는 왕실에서 능묘(陵墓)를 쓰게 되면 그 구역 내에 있는 사가(私家)의 묘는 이장하여야만 되었다. 따라서 공빈 묘소가 입장함에 따라 시중공 묘소도 옮겨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그때 선조대왕께서 "그분으로 말하면 과인이나 공빈에게도 외조(外祖)가 되는 터이니 이장은 하지 말라"는 왕명으로 간신히 수난을 면하였다.


그 후 선조 34년(1608)에 선조대왕께서 승하하자 세자이던 광해군이 조선왕조 제15대 임금으로 즉위하게 되었으며 임금이 된 광해군은 자신의 생모인 공빈김씨의 지위를 왕비의 지위로 격상하는 추존사업을 추진하여 마침내 1610년 광해군은 공빈김씨를 왕비의 지위로 격상시키고 그 묘소에 성릉(成陵)이란 휘호를 가하고 봉릉도감을 설치하게 이르렀다. 공빈김씨의 묘소가 성릉으로 격상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시중공 묘소의 이장문제가 대두하게 되었으며 이장은 불가피하게 되여 조정에서는 군신 간에 여러 차례 논의가 되었으며 자손들은 이장문제에 따른 비용 염출을 위해 친손만으로는 부족해 외손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는 통문을 보내고 이장 예정지까지 정하였던 상황에서 당시 영의정 이덕형의 의견과 영중추부사 윤승훈, 완평부원군 이원익, 청평부원군 한응인등 여러 신료들과 지관들의 증언으로 광해군은 왕명으로 이장만은 면하되 다만 봉분을 평치고 그 위에 나무를 심고 산을 꾸며 치산토록하게 되었으니 자손들은 물론 보는 사람마다 상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한다. 그러다가 광해군 15년(1623)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쫓겨나고 인조대왕이 즉위하자 성릉도 따라서 혁파되어 다시 공빈 묘로 환원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조 8년(1630) 자손들의 상소로 시중공 묘소 원상복구의 승인을 받고 그해 10월 많은 자손들이 묘하에 모여 고유제를 올리고 봉분을 짓고 옛 모습대로 복구하였다.


제관들이 제례시간에 맞추어 기다리고 계신다.



절차를 상의하시고,



제물을 진설하고,



기온은 내려갔으나 햇볕은 뜨겁다.



막바지 손질,





분정을 정하여 놓으시고,



난관에도 도열하고.





11시에 제례가 시작이되고,



국궁 재배중이다.





헌관이 집례를 행하시고,



시조의 은덕을 기린다.



굽어 살피시어 오래도록 행복되게 하여 주소서!



뜰아래 국화도 꽃망울을 활짝 피었다.



견성암의 주지스님이 천도불공을 올리려 기다리고,



울울백백의 송림이 싱그럽다. 소나무가 많고, 릉이 있다고 하여 이곳 지명이 송릉리이다.





묘역에 오르지 못한 종인들이 재실앞 마당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우리 종인모두가 화합하고, 행복되게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예성천(부사공 조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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