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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운영위원
제 목    회양공파 23세 충문공 영하 후배 정경부인 이정숙(李貞淑)여사

여사는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며 1857년(철종 8년)에 해석(海錫)의 막내 딸로 태어났다.


16세에 혜인공 영하(惠人公 寧夏)에게 출가(出嫁)하였다.


혜인공 영하는 1845년생으로 판서, 제학, 판돈녕을 지내고 후에 영의정이 증직 되었으며 시호가 충문(忠文)이다.


1879년(고종 16년) 정경부인(貞敬夫人) 존칭을 받았다.


1884년(고종 21년) 혜인공 영하는 갑신정변때 우정국사건으로 개화당에 의해 순직하였다.


여사는 일주간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죽엄을 택하였으나 시모의 간곡한 만류로 시모 봉양과 아들의 양육에 힘쓰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였다.


49세때 엄황귀비(嚴皇貴妃)와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 : 숙명여고의 전신) 설립을 의논하고 고종(高宗)의 하명으로 초대 교장에 임명 되었다.


당시 여자는 교육을 시키지 않는 때인데 가정방문을 하여 부모를 설득 양가자녀를 일체의 학비를 받지않고 교육시켰다.


졸업생에게는 정숙(貞淑) 두글자를 명심하라고 말씀하신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임종하기 전에 퇴직금 10,000원을 보냈는데 "숙명의 딸"에게 장학금으로 쓰라고 내놓아 문하생들의 협찬을 얻어 "이정숙 장학회"를 발족 시켰다.


1935년 7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후에 숙명여고 교정에 동상을 만들어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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