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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운영위원
제 목    7세 호군공 사충(護軍公 思忠)






공의 휘는 사충(思忠)이요, 봉선대부(奉善大夫)에 천우위 중령 호군(千牛衛 中領 護軍)이시다. 봉선대부는 위계가 종 4품이고 천우위는 중앙군(中央軍)인 육위(六衛 : 左右衛ㆍ神虎衛ㆍ興威衛ㆍ金吾衛ㆍ千牛衛ㆍ監門衛)중에서 의장(儀仗)을 담당하던 군대조직의 하나이며, 중령은 오늘날과 같은 장교 계급이 아니라 그 부대를 구성하는 편제(編制)의 한 단위이며, 호군은 그 영(領)의 지휘관 중 하나이다.
우리 조씨(趙氏)의 본관이 풍양(壤)이고, 고려시대 역대 선조의 거주지(居住地)는 그 관직으로 보아 개성(開城)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 심한 분산(分散)을 보게 된다.


호군공파(護軍公派)의 상주이거(尙州移居)와 회양공파(淮陽公派)의 임천(林川 : 現 扶餘)ㆍ춘천(春川)으로의 분산 거주(分散居住)가 바로 그 두드러진 현상이다.
그러나 호군공 이하 여러 대 자손들의 비문(碑文)을 보면 한결같이 처음으로 상주에 사신 것(始居 尙州)은 호군공이 아니라, 그 자제인 상의공(商議公 : 崇)으로 되어 있다.


호군공의 묘소는 실전되었으므로 상주 비란리(飛鸞里)의 상의공 묘소 옆에 설단(設壇)하고 세일제(歲一祭)를 받들어 오고 있음을 부기한다.
우리 가문이 이 때 이처럼 분산하게 된 까닭을 가화(家禍)를 들어 말하기도 한다. 곧 “호군공의 둘째 아우인 상서공(尙書公 : 思恭)이 신돈(辛旽)을 제거하기 위한 모의에 가담하였다가 도리어 화(禍)를 당하고 말았는데, 한 가문이 이로 인하여 분산되었다”는 것이다.


전부터 그런 이야기가 전하여 내려온 것으로 보이며 그것이 문장으로 쓰여진 것은 조선 헌종(憲宗) 때에 영의정을 지낸 운석공(雲石公 : 寅永)이 만락재공(晩樂齋公, 錫龍 : 承旨)의 묘갈명(墓碣銘)에서 인용한 것으로 가장 신빙성이 있는 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윗   글   8세 좌랑공 안평(佐郞公 安平) 운영위원  
  아랫글   7세 석간공 운흘(石磵公 云仡)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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