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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운영위원
제 목    15세 창강공 속(滄江公 涑) - 회양공파(한산군파 - 창강공파조)

1595년(선조28) ~ 1668년(현조9)
조선 중기의 서화가(書畵家)이다.
자는 희온(希溫)이고 호는 창강(滄江). 창추(滄醜), 취추(醉醜), 취병(醉病)으로 여러개를 썼으며 평택현감 풍옥헌 수륜(風玉軒 守倫)의 세째 아들이다.


1623년(인조원년) 평강현감(平康縣監)에 임명되었고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정사공신(靖社功臣)들과 모의하여 반정에 공을 세웠으나 한사코 훈명(勳名)을 사양했고 효종(孝宗)때 시종(侍從)으로 뽑혔으나 역시 사양했다.


1627년(인조5년) 경상도 도사에 임명되었으나 체임하였고


동년 10월에 덕산현감(德山縣監)을 지냈다.


1634년(인조7년) 사복시 판관(司僕寺 判官)을 지내다 임피현령(臨陂縣令)을 지냈으며


1640년(인조18)에 공조좌랑과 정랑을 거쳐 서산군수(瑞山郡守)를 지냈다.


1644년(인조22)에 형조정랑을 지냈으며


1645년(인조23)에 김제군수(金堤群守)로 나갔다.


1651년(효종2)에는 천안현령(天安縣令)을 끝으로 모든 관직을 뿌리치고 출사하지 않었다.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증직되었고 청백이(淸白吏)에 등재되었으며 필원록(筆苑錄)에 올라 있다.
그림은 영모(翎毛)와 매죽(梅竹)을 잘 그렸으며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장령(掌令), 진선(進善)에 이르렀다.
광주(廣州)의 수곡서원(秀谷書院), 과천(果川)의 호계서원(虎溪書院), 서천(舒川)의 건암서원(建巖書院), 김제(金提)의 백석사(白石祠)에 제향(祭享)되었다.
저서로 창강일기(滄江日記)가 있다.
작품그림으로 묵매도(墨梅圖), 지상쌍금도(枝上雙禽圖) - 이상 국립박물관
노수서작도(老樹棲鵲圖) - 덕수궁 미술관
글씨에 조 회양 사렴비(趙 淮陽 思廉碑 : 林川)등 그림과 글씨가 다수 남아 있다.


묘는 양주시광사동 자좌(子坐)에 배 정부인 청주 이씨(淸州 李氏)와 합부되어 있고 묘비, 신도비, 환석,상석등이 설치되었고 1자(지운 : 之耘)5녀를 두었다.


후배 증 정부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의 묘는 광사동 화봉왼쪽의 간좌(艮坐)에 있으며 1녀를 두었다.




  윗   글   15세 풍안군 흡(豐安君 潝) - 회양공파(한산군파 - 풍안군파조) 운영위원  
  아랫글   15세 집의공 일(執義公 溢) - 회양공파(한산군파 - 집의공파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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