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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운영위원
제 목    17세 퇴수암공 성복(退修菴公 聖復) - 회양공파(동곡파-성강공파)

공의 자는 사극(士克)이고 호는 퇴수암(退修菴)이다.


1681년(숙종7)에 감역공 휘 시채(監役公 諱 始采)의 2자3녀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1698년(숙종24)에 18세로 초시(初試)에 합격하였고


1702년(숙종28)에 22세로 문과에 올랐다.


의정부 사록(義政府 司錄), 승문원 부정자(承文院 副正字), 정자(正字), 저작(著作)등을 거처 봉상시 직장(奉常寺 直長), 성균관 전적(成均館 典籍)이 되었다.


내직으로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 지평(持平), 집의(執義)와 사간원 정언(司諫院 正言), 헌납(獻納)과 시강원 사서(侍講院 司書), 필선(弼善), 예조좌랑(禮曹佐郞), 병조좌랑(兵曹佐郞), 정랑(正郞), 헌납(獻納)과 봉상시정(奉常寺正), 겸직으로 기사관(記事官), 숙종실록 낭청(肅宗實錄 郎廳), 지제교(知製敎)였다.


외직으로 전라도사와 만경현령(萬頃縣令)을 지냈다.


1721년(경종원년) 사헌부 집의때 국가대사를 논했다가 소론파(少論派)에 의하여 유배되고 국문을 당하게 되었다.이 사건이 신축사화(辛丑士禍)이다.


1722년(경종2) 제주도 정의(旌義)로 유배지를 바꿨다.


1723년(경종3) 유배지 옥중에서 고문으로 돌아가셨다.


1725년(영조원년) 복관이 되고 사간원 대사간(司諫院 大司諫)에 추증 되었다.


1755년(영조31)에 자헌대부 이조판서(資憲大夫 吏曹判書)로 추증되고 충간공(忠簡公)의 시호가 내려젔으며 자손에게는 녹용(錄用)의 명이 있었다.


묘는 공주금난동 유좌(酉坐)에 배 증 정부인 황주 변씨(黃州 邊氏)와 합부되어 있으며 묘비가 있다.


1자3녀를 두었다.




  윗   글   17세 백인당 명규(百忍堂 明奎) - 회양공파(남산파-황교파) 운영위원  
  아랫글   17세 증 집의공 성집(贈 執義公 聖集) - 회양공파(동곡파-성강공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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