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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운영위원
제 목    족보(族譜) 소고

족보(族譜) 소고



趙 誠 明



족보를 갖고 있는 가정도 적으려니와 있어도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무척 많다. 족보를 이야기하려면 시대적으로 가장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되고 문화적으로나 사고의 발생자체가 어리석음의 극치를 이루는 경향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 역사의 한 단면임을 아는 사람은 극히 적다.


현대 지향적 문명과 경제부흥에 치중한 나머지 모든 역사는 망각의 늪으로 빠저들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역사는 과거이다.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이해할 수 있고 미래 지향적으로 새로운 정신세계를 개발할 수 있는것이다.


족보의 기원은 중국의 6조시대에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것이 처음이며 우리나라는 고려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으로 18대왕 의종(毅宗)때 김관의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이 효시라 할 수 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1409년(태종 9년) 하륜이 태조실록을 작성하기 시작하여 1413년에 완성하였고 1426년(세종 8년)에 춘추관에서 정종실록을 찬진한뒤 계속 제왕실록을 이어 왔다.


일반 성보(姓譜)로는 1467년(세조 13년)에 양성지가 해동성씨록(海東姓氏錄)을 편찬하였고 1650년대에 조종운이 씨족원류(氏族源流)를 편저하고 540여 문중의 보계(譜系)를 수집 기록한것이 모든 족보의 근간이 되었다.


체계적인 족보의 형태를 갖춘것은 1476년 성종때부터 이며 이때 안동 권씨 성화보(成化譜)가 처음 발간 되었으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고 기록만 있을 뿐이며 한 가계의 여자쪽을 많이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혈족 전부를 망라한 족보는 조선 명종때 편찬된 문화 유씨보가 유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에 우후죽순격으로 각 성씨마다 족보를 간행하게 되었는데 선대 특히 조선조 이전의 내력이 미비하여 추측으로 시조가 중국에서 도래한 것으로 기록된것이 많다. 조선조 중엽의 국내실정으로는 사대주의 사상이 농후하였고 중국에는 몇천 성씨가 있기에 시조를 중국 도래인으로 표기한 것이 많었다.


한국에도 김수로왕 후손, 박혁거세 후손, 김알지 후손, 등과 고구려의 고씨, 기자조선의 한씨, 고려의 왕씨, 제주의 고, 양, 부 등 선조를 확실하게 하였음도 신빙성을 갖게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고려 이전에는 문자의 보급과 통신이 전연 되지않는 시대였기에 족보의 중요성도 몰랐고 민가의 기록문서가 전무한 시대였기에 이를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다만 조선조에 들어와서 작성된 것이 왕조실록 및 승정원 일기등과 일치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와 족보를 같은 선상에서 연구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현재까지 발행되는 족보들은 거개가 한문위주로 되어 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살리려는 의도에서 편찬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현대 젊은 층은 대다수가 한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족보란 한 가정의 장식물로만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루 속히 한글과 한문의 혼용으로 다시 만들어야 하겠다. 최근에는 외국과의 교류가 잦으므로써 출신학교나 혼사관계의 도래인 이름을 영문으로 써야하는 경우가 많아젔다. 그러기에 한문만 고집하기에는 명분이 사라젔다.


형식에 억매이지 않고 과감히 수정보완하여 쉽게 이해하고 쉽게 검증할 수 있는 족보를 만들어 가정이나 문중에서 교육하여야 하겠다.


족보는 한 가정과 씨족의 역사이고 내용으로는 종(縱)으로 선대와 후대가 필히 기록되어 있고 횡(橫)으로는 동족관계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름, 자, 호, 시호, 등과, 생몰, 충신, 애국지사, 전적, 효자, 효부, 포상, 유고, 배향, 묘소, 묘표, 등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족보의 종류로는 편찬범위와 내용에 의하여 대동보, 족보, 세보, 파보, 가승보, 계보, 가첩 등 여러가지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각 관공서나 회사에서도 연혁지가 있다. 이를 통하여 그곳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우리 가정에 보관되어 있는 족보를 시간이 없다는 이유와 이해하기 힘든다고 들여다보지 않고 한문이라 읽지 못한다는 핑계로 내방처 둔다면 영원이 조상의 역사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행위가 될것이다. 틈 있는대로 읽고 연구하여 선조보다 나은 발전적 역사를 꾸미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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