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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운영위원
제 목    회양공 휘 신(淮陽公 諱 愼)

☆7세 회양공 휘 신(淮陽公 諱 愼)☆


 



공은 6세 대언공 휘 염휘(代言公 諱 炎暉)의 4자1녀중 셋째 아드님으로 태어 나셨다.


대언공은 위계가 정순대부(正順大夫)이고 밀직사 우부대언(密直司 右副代言) 겸 좌상시(左常侍 : 寶文閣 大提學)를 지내신분이고 어머니는 밀양 손씨(密陽 孫氏)이다.


큰 형님은 호군공 휘 사충(護軍公 諱 思忠)이고 중형은 상서공 휘 사공(尙書公 諱 思恭)이다. 이분이 공민왕에게 상소하여 신돈을 참형에 처할것을 청원하니 공민왕이 노하여 먼곳으로 귀양 보내는데 신돈이 부하를 파견하여 중도에서 목매여 살해하였다.


이로 인하여 위험을 느낀 가족들은 뿔뿔이 허터지게 되었는데 호군공은 상주로 아우 되시는 금주공 휘 임(錦州公 諱 袵)은 해주로 피신하였고 공은 작은 아드 님 사옹원정공 휘 개평(司饔院正公 諱 開平)만 데리고 호서 가림현(임천의 고호)의 덕림으로 은퇴하여 개명하고 포의 모옥으로 여생을 마첬다.


부인 되시는 고성 이씨(固城 李氏는 큰 아드님 좌랑공 휘 안평(佐郞公 諱 安平)을 데리고 춘천의 친정으로 가시게 되었다.


공은 초명(初名)이 사렴(思廉)인데 은거할때에 개명한것으로 전해진다.


위계가 봉상대부(奉常大夫 : 정 4품)이고 관직이 회양부사(淮陽府使)였으니 회양은 강원도 북단 금강산의 서북쪽에 위치한 고을이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공의 증손 한평군 휘 익정(漢平君諱 益貞)의 귀로 해서 통훈대부 사복시정(通訓大夫 司僕寺正)이 추증 되었다.


공은 문학이 풍부하여 태종대왕이 잠저에 있을때 공에게서 수학하였는데 왕위에 오르고 나서 공을 찾으니 이미 하세하신 뒤였다.


그리하여 자손을 불러 벼슬을 시키고 또 관에 명령하여 수모군 15명을 내려주어 묘를 지키고 초목을 금하도록 하였다.


그후 1597년(선조30년)까지 근 200여년 내려오다가 그 이후로는 폐지되어 회복되지 못했다.


공의 일생은 운곡 원천석과 아주 비슷하다. 특히 태종대왕 잠저시절 운곡과 더불어 사부였다. 그러나 운곡은 태종대왕이 왕위에 오른 뒤 세상을 떠났기에 임금의 예빙이 은근하였고 치악산까지 친히 찾아가는 영광을 안았었다.


공은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이 나서 사림의 종장(宗匠)이 되었고 권근 서거정, 박팽년, 유성원,등이 모두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회양공의 묘소는 옛날에는 임천(林川)이었으나 지금은 부여군장암면점상리의 덕림(德林)이란 곳이다. 이곳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옥녀직금(玉女織錦) 형국(形局)이라 하여 자손은 물론 풍수학자등 타인도 많이 찾는 곳이다.


태종대왕은 은사인 회양공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뒤 무학(無學)에게 "묘소 자리나 하나 잡아드리라."라고 하였다 한다.


무학이 덕림에 내려와 현재 있는 묘소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일설에는 무학이 임천으로 내려왔을때 회양공의 작은 아드님 사옹원정공(司饔院正公 開平)이 기발한 기지를 발휘한 끝에 임천의 오선영(五先塋)을 잡았다고 한다. 맨 먼저 동곡(東谷)에 자리를 하나 잡으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하여 다시 하나 잡아주기를 청하였으며 이런


방식으로 다섯군데를 잡아 회양공(淮陽公 愼 : 德林), 사옹원정공(司饔院正公 開平 : 東谷), 장사랑공(將仕郞公 厚之 : 新寺洞), 증 장령공(贈 掌令公 益祥 : 紙庄洞), 처사공(處士公 世賢 : 魯洞)등 명당을 얻었다는 것이다.


비석은 7대손 박(璞)이 찬하고 8대손 속(涑)이 썼으며 묘표는 9대손 최수(最壽)가 찬하고 10대손 현명(顯命)이 썼다.


신도비는 비서원승 김용한이 찬하고 비서원승 서만순의 전(篆)이고 부학사 이시영이 썼다.


배위 고성 이씨(固城 李氏)는 친정이 있는 강원도춘천으로 내려가 친정 아버님 향촌공 이암(杏村公 李嵒)의 보호를 받았고 열부(烈婦)의 정문을 받았으며 그 곳에서 돌아 가셨다. 묘는 춘선시석사동애막골에 있으며 묘비, 정려 유허비, 상석, 재실이 갖추어저 있고 자효회(慈孝會)에서 관리하고 있다.


2자2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좌랑공 휘 안평(佐郞公 諱 安平)이고 차남은 사옹원정공 휘 개평(司饔院正公 諱 開平)이다.


공의 묘소는 충남도 문화재 제119호로 책정되어 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덕림병사(德林丙舍)는 공의 재실로 사용하고 있으나 건축년대는 미상이며 전하는바에 의하면 고려조 덕림사(德林寺)인 것을 공의 산소가 이 곳으로 면봉과 동시 조령(朝令)으로 재실로 전환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며 충청남도 문화재 제305호로 책정되어 도에서 유지 관리하고 있다. 국내에는 공의 유허지와 신도비, 유적비 등이 있고 기타 관련 비석들이 있다.



동 곡 서 원(東 谷 書 院)



1826년 7월 회양공 건원 통문(淮陽公 建院 通文) - 덕림종회소


1826년 7월 칠산서원 통문(七山書院 通文) - 유생일동


1826년 9월 죽림서원 통문(竹林書院 通文) - 유생일동


1826년 8월 임천향교회통(林川鄕校回通) - 향교 유생 일동


1827년10월 경중회통(京中回通) - 재경종친


1930년10월 동곡서원발기통문(東谷書院發起通文)


1930년11월 동곡서원영건통문(東谷書院營建通文)



동곡서원은 회양공의 타령지소(妥靈之所)로서 부여군세도면동사리에 있다. 이곳 사림들이 공의 고상지절(高尙之節)을 숭모하기 위하여 건원하고 상절사(尙節祠)라 편액을 걸고 음 2, 8월 중정(中丁)에 향사하고 있으며 충남도 문화재 제92호로 책정되어 도에서 유지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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