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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 풍양조씨 딸의 자신 삶에 대한 기록(자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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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1 작성일26-01-27 17:26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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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님의 삶! 자기록(自己錄, 1792년)

- 풍양조씨 딸의 자신 삶에 대한 기록 -

 

일희 대종회 수단위원이 귀한 정보를 주셔서 종회원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18세기 후반 풍양조씨 딸이 자신의 지난 삶을 기록한 『자기록(自己錄)』을 남겼는데, 이 작품은 출판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수능 대비 EBS 교재에 들어갈 만큼 국문학적으로도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앞으로도 선조님들의 다양한 기록을 연재할 수 있도록, 무훈담·가문의 비화·효행 등과 관련된 소중한 자료를 종회원 여러분께서 지속적으로 기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poongyang3_5_01-1.jpg『자기록』은 저술 동기를 밝힌 서문으로 시작하여 아버지의 효성과 인품에 관련된 일화, 어머니의 인품과 관련된 내용을 서술하였다. 이어서 남편 김기화와 결혼하고 시부모를 봉양하던 시절과 남편이 병에 걸려 투병한 생활을 절절히 적고 있다.

 

"임자계츈의 풍양후인은 혈읍작셔하노라"라는 필사기를 통해 1792년에 저술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에 제문(祭文)과 저자의 술회 등을 후반부 10장에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자기록』은 사실적인 표현으로 저자 풍양조씨(1772~1815)의 생애를 기록하여 이를 통해 당대의 사회 분위기와 여성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역사적, 문학적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양가 집안 배경]

- 친정 풍양조씨 : 통신사 영호공 조엄의 당질

저자 조씨는 조감(1744~1804)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15살에 청풍김씨 집안의 김기화에게 시집을 갔으나 20살에 남편을 잃고 20년을 청상과부로 살았다.

 

poongyang3_5_01-2.jpg그녀의 친정 증조할아버지는 조도보로 큰아들인 학당공 조상경은 이조판서를 지냈고, 그 아들은 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고구마를 들여온 것으로 유명한 영호공 조엄이다. 조엄은 대사헌,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으며 그 부인은 혜경궁 홍씨의 고모로 홍봉한의 막내 누이이며 손자인 조만영이 조대비 신정왕후의 아버지이다. 저자의 할아버지 상수와 큰아버지 조철은 음서로 관직에 진출했는데 조철은 조엄이 통신사로 갈 때 자제군관으로 대동하였으며 아버지 조감은 32살에 무과에 급제하여 현감을 지냈고 조상경, 조엄의 귀양길을 따라다니는등 가깝게 지내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처럼 조씨의 친정은 서계(庶系)로 조상경, 조엄으로 이어지는 풍양조씨의 세력권에 있었으며 양자로 들인 조진숭이 일찍 죽어 대가 끊어졌지만 중앙 정치 권력의 주변에서 경제적으로도 비교적 부유했을 것으로 보인다.

 

- 시댁 청풍김씨 : 청풍 부원군 김우명 후손

조씨가 출가한 김기화의 집안은 현종의 장인 김우명(1619~1675)의 후손으로 시증조부가 무과에 급제하여 현감을 지냈으나 시할아버지, 시아버지는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다. 김기화는 이 집안의 독자이자 종손으로 온 집안이 과거급제를 기다리지만 일찍 죽게 된다. 김기화의 집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김우명의 적계손이며 증조부와 김기화의 양자 김최선이 무과에 급제한 집안이었다. 조씨의 친정, 외가, 시댁 모두 서울에 거주하며 무과에 급제한 집안라는 공통점이 있다.

 

[양가 집안과 남편 이야기]

- 시댁 이야기

조씨가 시집온 초기에 시모는 자신의 울적함을 달래기 위해 아들 부부에게 '유희'를 권하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부모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행동해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유교에서 전형적인 효행의 방식이다. 그러나 조씨는 그것이 낯설었다고 적고 있다. 또한 시모가 아들이 과거 공부를 위해 절에 가는 것을 막은 적도 있었으며, 그래도 남편은 다정했던 것으로 보이나 애교 많은 분위기의 시부모가 보기에 둘 사이는 애정이 부족한 무미건조한 관계로 평가했다. 이에 대해 조씨는 진지한 대화가 오가는 부부 관계가 더 진정 관계라며 시부모와 자신의 생각이 크게 달랐음을 드러냈다.

 

남편이 병에 걸렸을 때 시부모가 '밥만 잘 먹으면 된다'고 주장하자 몰래 친정에 약을 부탁하기도 했다. '흰밥 미역국을 국보로 안다'는 표현에서 시댁의 지나친 검약에 대한 반발과 비합리적인 처사에 대한 원망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렇게 시댁 어른들과의 가치관 차이에서 비롯되는 불만과 불신을 표시하며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다.

 

- 친정 이야기

조씨의 친정이 시댁 청풍김씨 가문을 많이 도와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씨의 친정에 대한 자부심과 정서적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버지 조감은 조씨가 결혼하기 전에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으나 시집간 후에는 그녀의 든든한 보호자이자 조력자로 시부모와 대조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조씨의 기록은 조선사회의 가족 정서를 다시 써야 할 만큼 놀라운 정보들을 담고 있다. 남편은 과거 공부에 열중하고 아내 조씨는 주로 친정에서 생활하였으며, 시집은 일이 있을 때 다니러 가는 곳이었다. 조씨 자매가 친정의 자기 방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이나 더할 나위 없는 아버지의 딸과 사위 사랑도 알려진 조선 여성상의 통념과 크게 다른 부분이다.

 

 

[훔친 목숨, 살아야 하는 이유]

서로 사랑하던 동갑내기 남편이 혼인한 지 5년 만에 스무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양반가의 법도로 보나 지우(知友)로서 서로 위해주던 관계로 보나 따라 죽는 것이 도리이고 의리이다. 이른바 열녀라는 것이다. “죽어 모르는 것이 즐겁고 차마 당하지 못한 지경을 견디며 사는 것이 더 혹독하니 저를 위하신다면 살라는 말을 마오.” 딴마음 품지 말라는 언니에게 조씨가 한 말이다. 남편이 생사를 오갈 때 생혈로 살려보고자 단지(斷指)를 하려다가 자결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그때 칼을 뺏던 아버지의 무너져 내리던 모습이 어른거린다. “내 생목숨 끊어 여러 곳에 불효를 하는 참담한 정경을 생각하니 차마 죽을 수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살아남기로 했다. 조씨는 “살 생각을 하라”고 재삼 당부하며 목을 놓아 흐느끼시는 아버지, 애타게 내가 살기를 마음 졸이시는 아버지, 내가 만일 죽으면 그 슬프고 끔찍한 설움에 눈이 멀 것 같은 아버지를 두고 차마 떠날 수 없었다. 청풍김씨 3대 독자인 남편을 사랑으로 애지중지 길러주신 시집 어른들은 어찌할 것인가. 딸도 없이 오직 아들 하나에 삶의 전부를 건 시조부모님과 시부모님, 그 참혹한 상심을 누가 돌볼 것인가. “남편은 시부모의 기둥인데 기둥이 부러지니 어디에 의탁하며, 남편은 시댁의 주춧돌인데 주춧돌이 꺾어지니 어찌 엎어지지 않으리오.” 나를 지극히 사랑한 그들을 두고 어떻게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이 또한 조씨가 살아야 할 이유였으며 훔친 목숨이라 표현하고 있다.

 

[자기록에 대한 후기]

남편을 떠나보낸 지 1년, 조씨는 지난 20년의 삶을 써 내려갔다. 200자 원고지 500장 분량의 이 책 『자기록』이 220여 년의 세월을 뚫고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과 십 수 년 전이었다. 가을의 과거장에서 향시를 보다가 병을 얻은 남편이 시름시름 3년을 앓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그 참혹한 과정과 남편이 죽은 후 따라 죽으려 했던 조씨는 죽지 못했고 ‘모질고 무상하다’고 말하면서도 그 과정을 자세히 글로 적었다. 자신이 기록으로 말하지 않는 이상 남편을 잘못 보살펴 일찍 죽게 한 박복한 여자라는 누명을 쓸 수도 있는 것이다. 남편이 죽은 연유와 책임이 부인에게만 돌려지는 당시 사회 분위기에 반발하는 심사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poongyang3_5_01-3.jpg조씨는 남편의 관에 직접 쓴 글을 넣기도 하였다. 주위에서 “바느질이나 전념할 것이지 문자를 아는 것은 팔자에 해로우니 삼가라”는 말에 “사람의 팔자는 하늘에서 이미 정한 것인데 무슨 말입니까? 너무 세세한 것까지 염려 마세요”라며 그만두지 않았다는 내용의 글도 남겼다. 이런 내용을 비추어 보았을 때, 자신을 표현하고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던 여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씨는 자살해서 열녀전에 입전되기보다는 살아남아 『풍양조씨 자기록』을 씀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기억의 중심에 서고자 했던 여성이었다.

 

번역자 김경미 선생은 『자기록』은 고난을 넘어서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자 죽음을 통한 삶의 기록이다. “죽음에 대한 지극한 슬픔을 표현한 애도 문학으로서 격조를 보인 작품”으로 평가한다. 무엇보다 조씨의 의미는 죽음과 삶의 기로에서도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성찰적 인간의 모습이다. 남성 지식인들의 붓끝에서 나온, 우리가 아는 열녀는 ‘한치의 주저함 없이 의(義)을 향해 돌진하여 장렬하게 죽은’ 굳센 의지의 소유자다. 그러나 저자 조씨는 그런 이념의 희생자가 되기보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뜻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기록』은 나에 대한 기록이기보다 가족을 통한 나에 대한 기록이다.

 

[자기록 책자 및 장서각 한글 특별전 내용과 장선환 규장각 책임연구원 글 인용 : 종보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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